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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삶의 지도

연어는 살아남고 싶다, 이 거친 물길 속에서

 

  코미디언에서 개발자를 꿈꾸기까지

어릴 때 나의 꿈은 코미디언이었다. 장난끼가 많아 친구들을 웃음짓게 하는 걸 좋아했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주고싶었다. 누군가의 슬픔은 나의 슬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중학생 때는 골목에서 웅크려 앉아 야채를 파는 할머니에게서 파를 한가득 사들고 가서 학원 전체에 파냄새가 진동했지만 모른척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복지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막연한 상상만으로 진로를 정하는 건 어려웠다. 그 직업을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잘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부모님은 사회복지사가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라며 반대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고3이 되었고 수시 준비를 했던 나는 진로를 결정해야 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까지도 나는 어떤 과를 선택해야할지 몰랐다. 그냥 주변 친구들을 무작정 따라했다. 그 안에는 건축학과도 있었고 컴퓨터학과, 치위생학과, 통계학과 등이 있었다. (실제로 이 학과들을 모두 지원했었다.)

각 과에 맞게 자소서를 튜닝(?) 하면서 내가 정말 그 과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더 먼 향후 계획까지 그려보니 신기하게도 그 모든 학과에 실제로 애정이 생겨나기도 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모두 매력적인 학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내가 각각의 과에 진학해서 직업을 가진 후 그린 미래의 장면들이 모두 “누군가 나의 도움을 받고 기뻐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스럽게 다가왔던 학과는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데이터에서 숨은 의미를 발견하고 미래의 행동까지 예측하는 것이 마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합격한 다른 과들 중에서도 이 과를 선택했고, 그렇게 내 인생 코딩을 처음 접했다.

 

 

  데이터사이언스는 처음이라

끈기가 있는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승부욕은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알고리즘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머리를 쥐어짜며 씨름하는게 그리 싫지 않았다. 한 문제에 하루 종일 걸리기도 했지만 풀고 나면 고민한 시간에 비례하게 뿌듯하고 기뻤다. 1학년 공학설계기초 수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냉장고를 부탁해”였다. (사실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냉장고의 남은 재료로 만들어먹을 음식을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워낙 먹을 것을 좋아했던 나의 아이디어였다. 파이썬도 제대로 모르고, 추천 알고리즘도 전혀 몰랐던 당시의 결과는 비록 고등어를 넣었을 때 유자차를 추천해주는 기괴한 수준이었지만 그 때 처음으로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성격은 학부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처음 들었던 동아리는 친구를 따라 갔던 인공지능 학술 동아리였고, 수학과 경영학과 등 여러 과에서 모인 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github에 자기소개를 작성한다거나, 포트폴리오로 나의 활동을 정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되었다. 그렇게 동아리에 맛이들려 연합 동아리 활동도 하게 되었다. 창의력 문제 해결 경진대회부터 해커톤, 부트캠프 등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결과가 좋든 안좋든 과정에서 배운점이 참 많았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연어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 과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18학번인 내가 2기였다. 그래서 선배 중 유일하게 취업한 언니를 찾아가 단독 취재를 하기도 했다. 언니는 나와 같은 동아리였고, 내 얘기를 전해주었는지 연합동아리 회장님으로부터 면접 제안 전화가 왔다. 그렇게 코딩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4학년의 여름에 첫 회사이자 현재의 회사인 이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취업까지의 과정이 뭔가 흘러흘러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 같다. 취업만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원과 취업 사이에서 공부보다는 빨리 실전에서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회장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물러서지 않았을까?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 것임을 느꼈고, 준비된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도 부서지고 깨지며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현재 회사는 스타트업이지만 대표님이 굉장한 열정맨이시고,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돕는다는 비전이 명확한 분이라 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신나게 헤엄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코딩의 코도 몰랐고, 마케팅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케팅의 마도 모르는 나였지만 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기쁨으로 여겼던 것,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 수행되었든 간에 나에게 큰 행복이었고 그 중 현재 내가 올라선 물길은 프로그래밍인 것 같다.